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쿠자와 유키치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근대 [[일본]]의 [[계몽주의|계몽운동가]] 겸 [[철학자]]로, [[메이지 유신]]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. [[게이오기주쿠대학]]의 전신인 게이오기주쿠(慶應義塾; 경응의숙)를 설립한 [[교육|교육인]], 現 [[산케이 신문]]의 전신인 지지신보(時事新報; 시사신보)를 창간한 [[언론인]]이자 [[민주주의|Democracy]](→民主主義), [[정부|Government]](→政府) 등 [[영어]]의 여러 어휘를 번역해 [[한자문화권]]에 소개한 [[언어학자]]이기도 하다. 당대 일본 지식인들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, 700여 년 간 이어져 온 [[막부]] 정치를 종식하고 서양의 문물을 수용하여 개혁할 것을 역설하였다. 한때는 [[진보주의]] 성향을 띠어 [[인권]] 운동가적 면모를 보였고, 이웃나라 [[조선]]에도 관심을 가져 [[김옥균]], [[유길준]], [[박영효]], [[홍영식]], [[서재필]], [[서광범]], [[윤치호]]등의 스승이 되어 [[구한말]] 급진 개화파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1884년 [[갑신정변]]에 개입하기도 하였다. 현대 일본에선 대체로 그를 [[자유주의자]]로 평하며 [[이토 히로부미]], [[오쿠마 시게노부]]와 함께 [[일본의 자유주의]]의 시조 중 하나로 여긴다. 그러나 한편으론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을 멸시하며 그들을 정벌할 것을 꾸준히 주장했고, 이른바 [[탈아론]]을 내놓아 근대 이후 일본의 [[탈아입구]](脫亞入歐: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 감) 경향과 [[일본 제국주의]]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기도 한 복합적인 인물이다. 나중에 가선 주변국뿐만 아니라 자국 일본의 민중까지도 우민(愚民: 어리석은 백성)이라며 멸시하는 [[자유주의 엘리트]]로 변모하였다. 1984년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10,000엔권 지폐에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상이 실려 있으며, 2024년부터는 [[시부사와 에이이치]]로 교체되어 발행될 예정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